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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
저자 김태영
출판일 2023년 05월 30일
크기 152×225
페이지수 328쪽
ISBN 978-89-8222-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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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실천적 지성!
현대 사회에 통찰과 대안을 제시하다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1주기를 맞아 후학과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기리기 위해 저자가 생전에 여러 지면에 발표하였으나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은 <김태영 논문선집> 2권으로, 세조왕권을 중심으로 한 전제왕권과 성리학 지배이념, 그리고 주자학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소농민 경영, 균전론, 한전론, 여전론, 사림파의 경제사상 등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을 조명한다. 

조선 성리학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립되어 전대부터 축적된 사회의 비리와 정치적 인습을 개혁하는 데 기여했으나, 중국보다 훨씬 외곬으로 주자학을 신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랫동안 집권한 노론당은 주자 유일주의, 주자 교조주의의 기치를 내세워 영구집권하려 했다. 균전・한전론은 조선 시대 토지의 겸병, 지주・전호제의 확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안으로, 주로 신진의 사림계 관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왕권을 가장 직접적으로 옹위해주는 훈척을 비롯한 현실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그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균전・한전론을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없었다.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은 이를 통해 사회의 비리와 정치적 인습의 개혁, 자영농을 보호하고자 한 왕정의 이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 전기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깨닫고, 당대의 문제인식을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혜안과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 출판사 리뷰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와 성리학,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은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논문선집!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그는 방대한 저작과 논문을 집필하고 민주화운동과 역사문화운동에 관여하는 등 학술연구와 현실참여 양 측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 성리학과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았다. 수많은 논저를 남겼지만, 특히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는 해방 이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후학과 제자들이 저자가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김태영 논문선집>은 제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제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 제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 제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전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적인 흐름은 고 김태영 저자가 중점을 둔 학문적 관심사의 변천과 궤를 같이한다. 이 논문선집을 통해 평생 연구에 매진해 한국사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비리와 정치적 인습을 개혁하는 데 기여한
조선 성리학의 발전과 주자학에 대한 의존,
이로 인한 한계를 심층 분석하다!

고려 후기에 수용된 주자 성리학은 조선왕조 때 배타적 국가 교학이자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립되었으며, 전대부터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의 비리와 정치적 인습을 개혁하는 데 기여했다. 조선 성리학은 세조의 패권적 전제정치와 이후의 훈척정치에 반발하여 점차 주자학에 의지했다. 왕권과 비리로 결탁한 훈척의 전횡으로 일어난 사화에 항거하기 위해 조선 성리학은 주자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으며, 주자학을 따라 국왕의 일심(一心)을 깨우치는 데 치중하는 심학화(心學化)의 길로 나아갔다. 퇴계의 이발설과 율곡의 기발일도설은 주자가 정리해두지 못한 이기심성론을 독자적으로 구분하여 이론화했다. 

특히 16세기 말부터 조선 성리학은 왜란・호란의 참상과 치욕을 겪음과 동시에 격렬한 당쟁의 시대를 맞았다. 당쟁에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서는 주자를 원용하여 더 뚜렷한 명분론과 의리론을 이론적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에 조선 성리학은 중국보다 훨씬 외곬으로 주자학을 신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랜 집권을 통해서 일당 전횡의 길을 마련한 노론당은 주자 유일주의, 주자 교조주의의 기치를 내세워 영구집권의 행태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조선 성리학이 원래 추구하였던 사회적 비리와 정치적 인습 개혁이라는 이상은 퇴색되고 말았다.

균전론, 한전론, 여전론, 소농민 경영, 사림파의 경제사상 등 
조선 전기 사회의 특징과 이에 따른 변화 양상을 조명하다!

조선 시대 토지의 겸병, 지주・전호제의 확대는 대세상 휴한농법의 극복과 연작농법의 보편화에 따른 생산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토지의 소유 관계・생산 관계가 한 단계 고양된 상태에서 전개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균전・한전론은 이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안으로, 주로 신진의 사림계 관인들이 주도했다. 왕토사상을 전제로 한 균전・한전론은 왕권의 대천리물적 속성에 근거해 전개되었다. 그러나 왕권을 가장 직접적으로 옹위하는 훈척을 비롯한 현실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로 인해 그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균전・한전론을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론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재야적인 실학자의 등장, 반계(磻溪)에서 다산(茶山)에 이르는 균전・여전・정전론 등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토지개혁론의 주창, 인간 위주의 토지소유 관계가 아니라 토지제도를 기준으로 하고 거기에 인간의 노동력을 배치하려는 국가공동체적 경영론, 그리고 왕권의 대천리물적 전제력의 강화를 통하여 개혁하려는 극단적 입장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양극단 현상이 변증법적 발전으로 전개되지 못한 그 현장에는, 19세기의 민란-농민전쟁이 필연적으로 이 낡은,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는 이러한 조선 시대 사회와 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대안을 제시한다.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사회’. 고금을 막론하고 궁리하였던, 그러나 쉬이 해결하지 못했던 지난한 문제가 다시 초미의 현실적 과제로 다가온 이 시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태영 논문선집>
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근간)
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근간)
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근간)



▣ 차례

책을 펴내며

제1장 조선 전기 사회의 성격
1. 사회편제의 변천 
2. 국가와 소농민경영 
3. 전제왕권과 성리학적 지배이념 
4. 조선 전기 사회의 성격

제2장 조선 초기 세조왕권의 전제성에 대한 일고찰 
1. 머리말 
2. 세조의 공신 우대정책 
3. 공신과 왕권의 전제성 
4. 훈척적 지배체제의 성립 
5. 결론  

제3장 주자학 세계관과 조선 성리학의 주체의식 
1. 문제의 제기
2. 고려 말 성리학 수용기의 국가중흥론
3. 조선 초기 왕정론의 전개와 주체의식의 구현 
4. 초기 사림파의 진출과 독자성의 구현
5. 16세기 사림의 도통의식과 자아의식
6. 사림정치 시기의 천덕론과 왕도론 
7. 17세기 조선 성리학의 교조주의화
8. 맺음말

제4장 조선 전기의 균전·한전론 
1. 머리말 
2. 균전적・한전적 제시책 
3. 조선 전기의 균전・한전론 
4. 균전・한전론의 이론 근거 
5. 결론 

제5장 조선 중기 사림파 성리학자의 경제사상 
1. 조선조 사림의 성장과 사림정치의 전개 
2. 16세기 조선 사림의 경제사상
3. 16세기 사림의 경제개혁론 
4. 사림파 경제사상의 현실과 이상 


▣ 지은이_ 김태영 金泰永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59년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부터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문리대 학장, 대학원장, 인문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뒤에는 경희학원 이사,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경희총민주동문회 상임자문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2022년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선 시대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1983)로 1986년 제1회 단재상을 받았다. 『실학의 국가개혁론』(1998)으로 1998년 제1회 미원학술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 실학과 다산 연구에 대한 공적으로 제7회 다산학술상 대상(2006)과 제3회 벽사학술상(2013)을 받았다. 이 밖에도 『조선 성리학의 역사상』(2006)을 비롯하여 많은 논저가 있다.  


▣ 책 속으로

왕권은 당시 사회에서 최고의 권세(權勢)와 부(富)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들을 소유한 자들과 직접 결탁하고 있었다. 왕권의 찬탈 혹은 옹위를 에워싸고 전개된 여러 차례의 정변을 통하여 배출된 이른바 훈신, 그리고 왕실과의 혼인 관계로 맺어진 척신 등은 일차적인 왕권의 옹호자였으며 지배체제의 상호 보험적인 운용자들이었다. 왕실 자체도 그러하였거니와 훈신과 척신 등 세가 자체가 워낙 전국에 토지와 노비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세가끼리의 혼인과 핵심 권력에의 참여를 통하여 정치권력・사회세력과 부를 재생산하는 방법으로 확보해가고 있었다.
-44~45쪽

조선 초기의 관계 사료를 읽으면서 필자는, 어쩌면 세조왕권이야말로 그 같은 문제의 해명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다소나마 열어두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원래 국왕이 될 위치에 있지 않았던 세조 자신이 정변(政變)을 일으켜 왕권을 탈취한 처지였으므로, 그 비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역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왕위・왕권의 전제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였다는 사실이 사료상으로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 성품이 상대적으로 경정(徑情) 직절(直截)하여 자신의 심경을 많이 그대로 토로하는 편이므로, 왕권의 행사와 관련된 객관적 정세를 어느 정도 사료상으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74~75쪽

이 사건은 중앙에서 조사하는 도중, 심지어 홍윤성이 홍산 호장(戶長) 이효생(李孝生) 등으로 하여금 오히려 윤씨 편이 “대신을 모해(謀害)”하기 위하여 사건을 꾸몄다고 ‘무고(誣告)’한 일까지 더하여 탄로 났다. 대간의 극단한 상소가 잇달아 홍윤성의 처벌을 주장하였으며, 신숙주 등도 “석 을산이 살인한 것이야 윤성이 처음에 어찌 알았으리오마는, 그러나 몰래 수리(首吏)를 시켜 오히려 윤씨를 해치려고 한 일이야 그 원정(原情)으로 말하면 어찌 무죄라고 할 것입니까”라고 하여, 홍윤성의 무고죄(誣告罪)를 국왕 앞에서도 명확히 말하였다. 그러나 세조는 살인에 직접 관련된 하 수인(下手人)들만을 처형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 “무고의 일은 모두 그의 아랫사람들이 한 짓이요, 윤성이 아는 바 아니다. 이 작은 일을 가지고서 공신을 죄줄 수는 없다”고 하여, ‘원훈’을 끝내 보전하였다. …
세조는 홍윤성의 무단(武斷)과 군사 은점(隱占)에 대해서만 힐책함으로써 그의 지나친 호강(豪强)을 자못 억제하려고는 하였으나 그의 무고행위는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반역에 관련된 죄가 아니고서는 끝까지 ‘원훈’을 왕권과 ‘일체’로 생각하여 보전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천도(天道)를 체현’한다는 왕권의 본질과는 어긋나는 처사였다. 
-90~91쪽

정창손은 결코 세자에게 전위(傳位)하는 것을 두고서가 아니라, 세자가 ‘크게 통달한 후’라는 사실에 찬동하는 뜻으로 ‘윤당’이란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 실언을 두고 조처한 세조의 문책은 모든 신료(臣僚)에게 그야말로 왕권, 왕위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게 하는 엄중한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정창손의 다른 마음은 ‘천지 귀신’조차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일편단심을 세조 자신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세조와 같은 전제왕(專制王)을 섬기는 데는 주관적 단심(丹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전위’의 뜻으로 받아들여져서 혹시라도 난신적자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을 철저하게 현재의 왕권・왕위 위주로 생각하고 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94쪽

이미 누누이 살핀바 신숙주와 한명회는 세조 일대를 통하여 가장 유능한 신료로서 인신(人臣)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신임을 받으며 중용된 원훈(元勳)이었다. 아마 인간적인 면에서도 여타의 어느 군신보다 가까운 관계를 지속한 사이였으리라고 보인다. 실상 그들의 ‘무례’와 ‘전천’이란 것도 그같이 친밀한 관계가 오래 지속됨으로 인하여 생겨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말을 검토해보면, 세조는 그들에 대해서조차 결코 ‘일체’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즉 그는 그들의 ‘무례’와 ‘전천’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못마땅한 감정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는 결코 그 감정을 털어버리지 않은 채 간직하고 있다가, 반란 연루설이 나온 기회를 이용하여 엉뚱한 다른 관인을 형사(刑死)시켜 가면서 조정을 ‘숙청’하고, 끝내 그 감정을 발설하여 모든 신료가 양자의 죄를 성토케 하고, 그 성토의 논조에 대해서는 칭찬도 해주는 거조를 벌였다. 양자의 ‘무례’와 ‘전천’의 죄과를 널리 드러내며 극도로 부각시키고 난 후에야 일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102쪽

훈민정음의 제정은 조선 초기 제도 정비기의 문화적 주체성의 창달에 관한 사례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이 시기 백성이란 존재가 이미 맹목적으로 지배에 복종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이제 가르쳐 깨우쳐가면서 통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교화정책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성리학적 교화라든가 주체성이라는 것을 거론하기 이전에, 자국의 ‘어리석은 백성’이 일상에서 쓰는 말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떳떳한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주체성의 정립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53쪽

그런데 조선 성리학은 국가 교학으로서의 성격을 결코 지양하지 못하고 대체로 지배층 위주의 학술이론으로 일관하였다. 성리학에는, 그 이전의 고전 유교에서부터 워낙, 서양식 의미에서와 같이 인간의 자아를 위주로 하는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 넓은 의미의 국가 통치론이었던 것이다. 조선 성리학 또한 넓은 의미에서 정치 교학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종하였기로, 학문 자체에 고유한 순수 이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정치와 깊이 결탁할수록, 이상정치인 왕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 본연의 성격 또한 퇴색함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실학이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지니면서 탄생한 것이다.
-206쪽

이이는 왕정의 구현을 위한 세도(世道)의 만회를 자임하면서, 자신의 개혁론을 따라 동요됨이 없이 3년만이라도 실행한다면 왕정을 반드시 구현할 수 있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피력하였다. 선조임금 또한 이이를 크게 신임하고 국정을 ‘위임’한다는 대화까지 직접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의 경제개혁론은 한 가지도 시행되지 못했을까? 무엇보다도 국왕이 변통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에서 기인한다고 이이는 진단한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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