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홈
  2. 도서
  3. 분야별 도서
기본 정보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저자 김태영
출판일 2023년 10월 30일
크기 152×225
페이지수 592쪽
ISBN 978-89-8222-750-9
배송비 4,000원 (5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
구입처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SNS 상품홍보
SNS 상품홍보
화장품 차콜 색상 이미지-S9L1
▣ 책 소개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실천적 지성!
현대 사회에 통찰과 대안을 제시하다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1주기를 맞아 후학과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기리기 위해 저자가 생전에 여러 지면에 발표하였으나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은 <김태영 논문선집> 4권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국가개혁론을 조명한다. 

다산 정약용은 성호학과 서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세치용의 학풍을 개방적으로 확립하고, 이용후생학까지 아울러 점검하고 개발하였다. 다산 실학의 경세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가다듬어진 통치론으로, 고전으로서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은 통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국가와 민생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다산 경세론의 각론을 세밀히 분석하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정약용이 구상한 국가개혁론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조망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깨닫고, 당대의 문제인식을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혜안과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 출판사 리뷰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와 성리학,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은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논문선집!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그는 방대한 저작과 논문을 집필하고 민주화운동과 역사문화운동에 관여하는 등 학술연구와 현실참여 양 측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 성리학과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았다. 수많은 논저를 남겼지만, 특히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는 해방 이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후학과 제자들이 저자가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김태영 논문선집>은 제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제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 제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 제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전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적인 흐름은 고 김태영 저자가 중점을 둔 학문적 관심사의 변천과 궤를 같이한다. 이 논문선집을 통해 평생 연구에 매진해 한국사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역사적 의미를 심층 분석하다!

무릇 지배와 복속이라는 오랜 인습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조직과 사회윤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인간의 상호 이해를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가조직의 원리와 사회관계를 고안한 것은 조선 후기의 실학이 처음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와 같은 문제를 체계화하고 비로소 새로운 사회윤리의 바탕이 되는 가치 관념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실학 왕정론의 한 분야로서, 역사적 변혁의 의미를 지닌 새로운 사유 체계의 출현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성호학과 서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세치용의 학풍을 개방적으로 확립하고, 이용후생학까지 아울러 점검하고 개발하였다. 특히 다산 실학의 경세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가다듬어진 통치론으로, 고전으로서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우리나라 전근대 역사에서 국가체제의 구성과 운용에 관한 제도적 원형을 전반적・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운용하면서 그 주민들 각자가 저마다의 실질을 살려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곡진히 모색하여 제시하되, 이상적인 면에서부터 현실적인 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례를 탐구함으로써 전근대 국가체제의 최후의 원형을 집대성했다.

다산이 구상한 경세론의 객관적 기준과 확고한 기초를 이루는 것은 정전제론이다. 다산의 정전제론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선진적 국가 경제론을 두루 검토한 후, 정전제의 기초 위에 부공제를 실시하고 만민을 9직으로 편성 배치한다는 균직론을 제시한다. 모든 주민을 분업적 협업으로 연계한다는 최선의 사회경제론을 성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비록 현실적 실현을 보지는 못했으나 다산은 전근대의 다양한 토지 개혁론과 그에 기초하여 운용할 왕정론에 관한 모든 이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한 최후의 원형을 모색하여 정립해놓았다.

다산의 산업행정체계 개혁론은 산업경제의 개발과 진흥이라는 독자적인 과제로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왕권과 정치라고 하는 통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산의 왕권은 강력 무비하고도 지공무사(至公無私)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왕권론이 삼대의 통치체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시도로 일관한 것은 현 실태 호강자(豪强者)들의 극단적 농단과 비리의 행태를 지양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명명백백한 근본 표준을 정립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사회윤리론의 방향을 제시한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경학과 경세론 양면에서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이 구상한 ‘왕정’은 조선왕조 사회 고유의 봉건적 속성을 왕권론・소유론・생산론에 걸쳐 적극적 방향으로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리고 개별 생산 주체의 자립적 자영성, 소유의 공공성, 그리고 통치권의 중립성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고안하였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 같은 개혁론의 극단적 추구는 봉건적인 것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상호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의 국가개혁론은 다분히 이상론적 구상에 속했다. 그는 ‘선왕’의 ‘왕정’을 준거로 삼고 고경(古經)의 원뜻을 추찰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인식체계를 실학적 국가개혁론으로까지 일관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처음부터 적었다. 실학의 왕정론과 마찬가지로 다산의 사회윤리론도 현실에서 수용되기에는 어려운 형세였다. 그러나 왕정론의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은 장차 새로운 사회를 조성함에 있어서 상하종횡의 모든 인간관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사회윤리론의 보편적 통로를 추구하고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은 이러한 다산 정약용 사상과 경세론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대안을 제시한다.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사회’. 고금을 막론하고 궁리하였던, 그러나 쉬이 해결하지 못했던 지난한 문제가 다시 초미의 현실적 과제로 다가온 이 시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태영 논문선집>
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
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
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 차례

책을 펴내며

제1장 다산의 국가개혁론 서설
1. 머리말 
2. 체제개혁안 
3. 개인론 
4. 공동체론 
5. 왕권론 
6. 맺음말 

제2장 다산 실학에서의 사회윤리론
1. 머리말 
2. 유가의 전통 윤리와 인간관 
3. 다산의 새로운 인간관 
4. 다산 실학에서의 새로운 사회윤리 
5. 사회윤리의 이론 근거 
6. 맺음말 
  
제3장 다산 경세론에서의 왕권론
1. 머리말 
2. 조선 성리학 왕권론의 특징 
3. 다산 경세론의 성격 
4. 다산의 왕권론 
5. 맺음말 

제4장 『경세유표』에 드러난 다산 경세론의 역사적 성격
1. 머리말 
2. 유배 이전 다산의 현실 인식 
3. 새로운 경학 공부 
4. 『경세유표』의 저술 
5. 『경세유표』에 드러난 경세론의 역사적 성격 
6. 맺음말

제5장 다산의 국가 산업행정체계 개혁론
1. 머리말 
2. 산업・기술 개발론 
3. 전담 개발 행정론 
4. 전업 구임 책성론 
5. 작동의 점검: 고적론 
6. 맺음말 

제6장 다산 정약용의 정전제론
1. 머리말 
2. 사환 시기 다산의 토지론 
3. 다산의 정전제 이론 
4. 정전제의 시행 
5. 정전제를 기초로 하는 부공제・직론 
6. 다산 정전제론의 역사적 의미 
7. 맺음말

제7장 다산의 통치법제와 통치이념론
1. 머리말 
2. 다산의 새로운 통치법제론 
3. 새로운 통치법제의 이념 
4. 변법론의 탄생 
5. 맺음말 

제8장 다산 정약용은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1. 머리말 
2. 새로운 공부의 길 
3.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과 치인 공부 
4. 객관적 기준의 정립과 ‘실행’주의 
5. 맺음말: 역사적 의미 


▣ 지은이_ 김태영 金泰永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59년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부터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문리대 학장, 대학원장, 인문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뒤에는 경희학원 이사,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경희총민주동문회 상임자문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2022년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선 시대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1983)로 1986년 제1회 단재상을 받았다. 『실학의 국가개혁론』(1998)으로 1998년 제1회 미원학술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 실학과 다산 연구에 대한 공적으로 제7회 다산학술상 대상(2006)과 제3회 벽사학술상(2013)을 받았다. 이 밖에도 『조선 성리학의 역사상』(2006)을 비롯하여 많은 논저가 있다. 


▣ 책 속으로

무릇 지배와 복속이라는 오랜 인습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조직 및 그 사회윤리와는 성질을 달리하는, 인간의 상호 이해를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조직의 원리 및 그 사회관계가 고안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실학에서 처음 일어난 이론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특히 다산에게서 새롭게 체계적으로 인식되고 비로소 새로운 사회윤리의 바탕이 되는 가치 관념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것은 실학의 왕정론의 한 분야로서, 역사적 변혁의 의미를 지닌 새로운 사유 체계의 출현에 해당하였다. 그것을 다산은 천애(天涯)의 바닷가에서 ‘천의강감(降監)’ 아래 깨닫게 되었던 것이라고 명기해놓았다.
-119~120쪽

그로부터 80년 뒤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현 실태 지배체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에서 출발하여 보다 원대한 근본적 변화를 지향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성호학(星湖學)과 서학(西學)의 영향을 받으면서 더 개방적인 학풍을 확립하고, 이용후생학까지를 아울러 극진히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경학(經學)과 경세론(經世論) 양면에서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고경(古經)의 묘리(妙理)를 끝까지 추구하여, 가령 삼대 왕정의 기초였다는 정전제(井田制) ‘본법(本法)’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탐색해낸다든가 혹은 진(秦)나라 분서갱유에서 회신되고 말았다는 『악경(樂經)』의 복원에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경학은 유학사상(儒學史上) 전에 없는 최고 수준을 성취하였다. 또 그렇게 깨달은 고경의 원리를 펼쳐내어 보다 원대한 목표 아래 보다 구조적으로 저술한 『경세유표』 역시 한국 전근대 경세론의 최고 수준을 집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312쪽

실학을 집대성하였다는 다산의 경우도 처음에는 한때 균전론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유배기의 오랜 경학 공부를 통한 깨우침에 따라 그는 마침내 ‘정전제론’을 궁극적인 것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정전제론은 중세 후기 유교 문화권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다산 혼자만이 구체적으로 추구한 독자적인 토지론으로 이해된다. 독자적인 만큼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 좀처럼 연결되기 어려운 특수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도 살펴진다.
-386쪽

한 해에 두 번이나 거듭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그가 유배 간 곳이 강진(康津) 땅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그의 학문의 성취를 위해서는 불행 중 그래도 다행스러운 환경을 설정해주는 셈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그의 외가 쪽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특히 많은 책을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둘도 없는 지기(知己)로서 학문을 토로하며 궁극적인 소신을 인가받을 수 있는 그의 형 손암(巽菴) 정약전이 그나마 편지 왕래가 가능한 섬으로 유배 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571쪽

6경 4서의 연구에서 다산은 실로 손암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었다. 아마도 지기인 그 형의 조언과 인가가 없었더라면 그의 연구 또한 온전하게 진척되기가 자못 어려웠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경학의 연구를 일단 다 끝내고 나서 그 형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그 자신의 학문의 성취를 위해서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연관을 그는 살아서 돌아온 고향집에서 환갑을 맞아 「자찬묘지명」을 지으면서 회상해두었다.
-575쪽

장바구니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