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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
저자 김태영
출판일 2023년 08월 30일
크기 152×225
페이지수 556쪽
ISBN 978-89-8222-749-3
배송비 4,000원 (5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
구입처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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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실천적 지성!
현대 사회에 통찰과 대안을 제시하다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1주기를 맞아 후학과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기리기 위해 저자가 생전에 여러 지면에 발표하였으나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은 <김태영 논문선집> 3권으로, 성리학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실학의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반계 유형원, 농암 유수원,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 한치윤 등 조선시대 대표 실학자들의 사상을 조명한다. 

조선 성리학은 참담한 사화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그 폐정을 극복하기 위해 본원주의적 왕정론을 제시하였으나, 양란으로 크게 피폐해진 국가와 민생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학은 성리학과 마찬가지로 유교 경전에서 출발하였으나 역사와 현실의 해석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 왕정을 실현하는 궁극적 방법으로서 국가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추구한 실학은 역사적으로 한 걸음 더 진보한 통치론이었다.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은 통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국가와 민생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조선 실학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깨닫고, 당대의 문제인식을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혜안과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 출판사 리뷰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와 성리학,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은 
역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의 논문선집!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그는 방대한 저작과 논문을 집필하고 민주화운동과 역사문화운동에 관여하는 등 학술연구와 현실참여 양 측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사회경제사, 성리학과 실학 등 사상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았다. 수많은 논저를 남겼지만, 특히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는 해방 이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후학과 제자들이 저자가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김태영 논문선집>을 발간했다. <김태영 논문선집>은 제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제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 제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 제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전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적인 흐름은 고 김태영 저자가 중점을 둔 학문적 관심사의 변천과 궤를 같이한다. 이 논문선집을 통해 평생 연구에 매진해 한국사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 김태영 교수의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을 극복하고 국가와 민생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실학의 발전 양상과 그 역사적 의미를 심층 분석하다!

조선시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은 참담한 사화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그 폐정을 극복하기 위해 본원주의적 왕정론을 제시하였으나, 양란으로 크게 피폐해진 국가와 민생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통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국가와 민생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새로운 학풍으로 ‘실학’이 등장했다. 

조선 성리학과 실학은 모두 유교의 경전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고, 이상적 통치 형태인 왕도의 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하였다. 둘 다 유학의 새로운 형태이지만 성리학과 실학은 각기 역사와 현실의 해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며,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각기 학풍의 내용을 달리하였다. 

‘탈성리학적’인 학풍이라고 흔히 불리는 실학은 임진・병자의 양란과 국제정세의 질적 변천을 목도하면서, 국가사회의 존립 기반인 소농의 몰락과 유망으로 대표되는 혼란스러운 현실이 결코 폐정 탓만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통치법제 자체가 지닌 구조적 결함에서 기인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래서 ‘조종의 법제’를 포함한 통치법제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조선 성리학과 실학이 각기 추구하는 왕정론은 매우 다른 성격을 띤 형태로 구현되었다. 

실학의 개혁론은 역사적으로 한 걸음 더 진보한 통치론이었으나, 유교 경전의 본원적 이념을 추구하였기에 복고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 다산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의 개혁안은 낡은 인습의 역사를 지양하고 새로운 시대의 창출을 갈망하는 새로운 국가체제론의 기본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유형원, 유수원, 안정복, 정약용, 한치윤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들의 사상을 조명하다!

‘주자 성리학’이 권력과 부의 편중에서 야기되는 조선왕조의 비리와 인습을 해결하지 못하자, 일부 학인들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들은 ‘탈성리학’의 독자적 사유를 바탕으로 제3의 시각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실학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유학의 이상인 왕정(王政)을 실현할 수 있는 궁극적 방법으로 국가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추구하였다. 유형원, 유수원, 안정복, 정약용, 한치윤 등은 실학의 체계화와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반계 유형원은 실학을 하나의 학풍으로 체계화하였다. 그에 따르면 왕정이 구현되었던 삼대(三代)의 법제는 천리(天理)에 따라, 후세의 법제는 인간의 사욕(私欲)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삼대 이후로 국가의 통치가 화란에 화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전의 폐습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실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왕정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 법제의 정립이 절실한 과제라고 보았다. 유형원의 개혁 구상은 󰡔반계수록󰡕에 집약되었다. 그것은 유교 이념의 국가체제론 가운데 가장 독자적 내용을 갖춘 창의적 저술로 평가된다.

농암 유수원은 󰡔우서󰡕를 통해 조선왕국의 고질적 폐습인 문벌 제도를 타파하고, 사족 신분이나 관직 같은 지배적 신분과 지위를 개별 인간의 자질과 노력 여하에 따라 획득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상공업을 국책 과제로 집중 발전시킴으로써 기존의 사회체제에 충격을 가하고 조선왕국의 빈궁한 경제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우서󰡕의 실학적 개혁론은 이념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질적, 공리적 실효성을 중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해동역사󰡕는 한치윤이 철저한 고증학적 방법으로 편찬한 새로운 역사서이다. 저자는 ‘해동’ 지역의 역사에 관한 고대 ‘동이족(東夷族)’의 기록이 미비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토대로 내용을 구성하였다. 인용된 중국 측 자료가 540여 종, 일본 측 자료가 20여 종에 달한다. 유득공은 관련 사료를 직접 배열함으로써 사료 자체로 사실(史實)을 말하게 하는 방식을 취했고, 찬자 자신의 해석과 견해는 최소한으로 한정하였다.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은 이러한 조선 시대 사회와 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대안을 제시한다.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사회’. 고금을 막론하고 궁리하였던, 그러나 쉬이 해결하지 못했던 지난한 문제가 다시 초미의 현실적 과제로 다가온 이 시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태영 논문선집>
1권 『조선 전기 과전법 연구』
2권 『조선 전기 사회와 사상』(근간)
3권 『실학, 그 역사상의 재인식』(근간)
4권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근간)



▣ 차례

책을 펴내며

제1부 실학 연구사

제1장 실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 
1. 머리말 
2. 실학 발흥 당시의 상호 관심 
3. 실학에 대한 현실적 관심의 태동(구한말) 
4. 조선학 운동의 전개와 실학의 재인식(1930년대) 
5. 실학 연구의 심화와 체계화(1950~1980년대) 
6. 실학 연구의 확대와 분화(1990년대 이후) 
7. 맺음말 

제2부 실학의 성격

제2장 실학의 진보성과 보수성 음미 
1. 머리말 
2. ‘탈성리학’과 실학 
3. 대신위임통치론과 왕권론 
4. 실학의 본질적 보수성 
5. 맺음말 

제3장 조선 성리학과 실학의 역사적 연관 
1. 머리말
2. 본원주의적 유교 왕정론
3. 조선 성리학의 폐정개혁론 
4. 실학의 국가체제 개혁론 
5. 조선 성리학과 실학의 왕권론 
6. 맺음말  

제3부 실학의 개혁론

제4장 반계 유형원의 변법론적 실학풍 
1. 머리말 
2. 반계의 실리론 
3. 반계에서 탄생한 조선 실학 
4. 반계의 현실 개혁 구상 
5. 반계 실학의 변법론  
6. 반계 실학의 특성과 의미 

제5장 반계의 변법적 통치론 
1. 머리말 
2. 반계 실학의 통치이념 
3. 반계 실학의 변법론 
4. 반계 실학의 변법적 통치론 
5. 맺음말 

제6장 󰡔우서󰡕에 드러난 농암의 농정론 
1. 문제의 제기 
2. 농업 개량론  
3. 호적제와 균부론 
4. 액전법론 
5. 영농론 
6. 맺음말 

제7장 순암 안정복의 향정론 
1. 머리말 
2. 향정 기구로서의 향약과 동약 
3. 순암이 기초한 동약 
4. 순암의 향정 즉 왕정론 
5. 맺음말 

제8장 한치윤의 󰡔해동역사󰡕 연구 
1. 머리말 
2. 한치윤의 생애와 학술 
3. 마숙의 󰡔역사󰡕와 󰡔해동역사󰡕
4. 연구사 정리
5. 󰡔해동역사󰡕의 고찰 
6. 맺음말 


▣ 지은이_ 김태영 金泰永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59년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부터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문리대 학장, 대학원장, 인문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뒤에는 경희학원 이사,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경희총민주동문회 상임자문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2022년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선 시대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1983)로 1986년 제1회 단재상을 받았다. 『실학의 국가개혁론』(1998)으로 1998년 제1회 미원학술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 실학과 다산 연구에 대한 공적으로 제7회 다산학술상 대상(2006)과 제3회 벽사학술상(2013)을 받았다. 이 밖에도 『조선 성리학의 역사상』(2006)을 비롯하여 많은 논저가 있다. 


▣ 책 속으로

주자의 경우처럼 율곡 또한 왕정은 반드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다만 주자는 한 번 그러한 다짐을 두어 본 터이지만, 율곡은 무려 3차례에 걸쳐, 그것도 만년에 갈수록 그러한 다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주자의 경우보다도 율곡은 왕도의 실현을 위해 순사할 각오가 더욱 확고한 셈이었다. 주자의 길을 따르면서도 율곡은 주자의 경우보다 더 철저한 왕정회복론자였으며, 더 본원주의적인 왕정론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73~74쪽

사림정치의 시대를 맞고서도 어째서 왕정은 실현할 수 없고, 당쟁은 더욱 치열해져 가는가. 어째서 중화문명에서조차 주자학은 국가 교학으로 숭앙받지 못하며 왕정을 실현하지 못하게 된 것인가. 게다가 임진왜란을 겪고 병자호란을 맞으면서 조선왕국은 이적의 청나라에 항복하고 마는 참담한 현실을 겪었다. 이윽고 중국에서는 중화 왕조인 명이 멸망하고 말았다. 국내외의 통치질서・사회질서가 크게 변질되었다. 
성리학을 가지고 왕정의 실현을 기대하기에는 세태가 점차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야적 학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새로이 모색하되, 주자 성리학이 아닌 제3의 시각, 다른 기준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왕정을 실현하는 궁극적 방법으로서 국가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추구하는 학인이 등장할 수 있었다. 실학은 그렇게 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99쪽

반계 유형원(1622~1673)은 태어난 바로 다음 해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큰 참화를 두 차례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그 첫 번째는 출생 다음 해에 부친이 소위 ‘유몽인의 역옥(逆獄)’에 연루되었다는 무고(誣告)를 당해 억울하게 희생된 참화였다. 이 억울한 참화에 대해서는 그가 차츰 성장하면서 자세히 알게 되었겠지만, 그로 인한 가정의 파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환란으로 각인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의 일생에 실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마도 현실의 ‘정치’라는 것은 결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통렬한 비판의식을 일평생 간직하였을 것으로 이해된다.
-177쪽

󰡔우서󰡕의 실학적 개혁론은 대체로 이념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질적・공리적(功利的) 실효성을 중시하는 특징을 띠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이 대체로 이념적 측면을 강하게 지닌 사실에 비한다면 󰡔우서󰡕는 매우 현실적이라는 특이성을 띠고 있다. 그래서 자못 실효성이 높은 개혁론들을 다수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객관적 사실과 관련해 다소의 착오를 일으키고 있어 전체가 조화로운 개혁론으로서의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393쪽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해동역사󰡕가 의거해 서술한 중국 측 사료 가운데에는 사실관계의 개념적 착오를 보이는 대목 또한 없지 않다. 가령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과 원균의 전공을 잘못 서술해둔 경우가 그러하다.
주지하듯이 왜란 때 왜적은 먼저 육로를 통해 조선 땅으로 침략하고, 뒤이어 수군이 남해와 서해의 해로를 통해 북상하면서 육군과 합세하여 중국까지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왜의 수군이 남해의 한산도 해전에서 결정적으로 패퇴하여 아예 서해로는 진출할 수 없어졌고, 따라서 원래의 전략에 근본적 차질이 일어났다.
그런데 조선 수군을 지휘하여 한산도 해전에서 승리한 주장(主將)은 주지하듯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었다. 그러나 󰡔해동역사󰡕가 인용한 중국 측 사료에는 그가 원균인 것으로 드러나 있다.
-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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