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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저자 리처드 월린
출판일 2021.03.05.
크기 112*152mm
페이지수 488
ISBN 9788982226861
배송비 4,000원 (5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
구입처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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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위대한 철학자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들뢰즈,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보드리야르, 라캉 등의 철학자들을 매료시켰으며 독창적인 근대 사상을 자극해 현대 사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서구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하이데거가 한때 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나치를 옹호한 그의 행위와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리처드 월린 뉴욕시립대 교수는 하이데거의 네 유대인 제자들이 그의 나치즘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이후 어떠한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직접적인 동기와 그의 사상이 갖는 의의와 한계, 그리고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객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섬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각자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받은 영향은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자들이 펼치는 긴 학문적 여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이데거의 사유 방식이 갖는 풍요로움과 한계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스승의 나치 참여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유대인 제자들의 딜레마

하이데거는 1920년대 매력적인 강의로 독일의 젊은 지성인들을 끌어들였다. 제자들은 하이데거와 운명을 같이함으로써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나치즘 전향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짧지만 히틀러 정권에 협조한 하이데거의 여파로, 제자들은 하이데거와 함께하면서도 하이데거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추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승의 강력한 그림자를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이데거와 동시대인이면서 그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스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의 반유대주의 속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경험한, 비범한 재능을 가진 유대인 제자들이 지적 분리로 인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독일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그들은 하이데거의 ‘시대 진단’을 상당 부분 공유했다. 이는 제자들이 중요한 사상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20년이나 철학을 포기할 정도로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의 사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화해한 후에는 그의 사상을 옹호했으며,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의 입장에서 ‘악의 평범성’ 이론을 전개했다.
-근대 역사의식과 철학의 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사상을 발전시킨 카를 뢰비트는 하이데거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으나, 철학사에 대한 그의 접근과 철학적 방법에 대한 이해는 하이데거에게 철저하게 빚지고 있다.
-동화된 다른 유대인 제자들과 달리 한스 요나스는 유대교를 연구한 생태학자로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으나, 재난에 대한 대안으로 전제정치를 옹호해 하이데거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렌트, 요나스, 뢰비트가 하이데거 철학의 궤적 안에 어느 정도 머물렀던 반면, 비판적 마르크스와 헤겔의 영향을 받은 마르쿠제는 스승에게서 영향받은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틀에 결합했으며, 하이데거 사유의 틀 내에서 근대 산업사회와 과학기술을 비판했다.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유대인 제자들에게 끼친
하이데거 사상의 영향력과 현대적 의의

1930년대 초에 나치를 열성적으로 옹호한 하이데거가 유대인 철학자인 후설의 제자이자, 재능 있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아이러니이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었던 하이데거는 학생들의 나치 혁명 동참을 독려하고, 동료 교수들을 급진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했으며, 유대인 제자들과 교수들, 심지어 자신에게 교수직을 마련해준 스승 에드문트 후설까지 배신하며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했다. 하이데거와 같은 대사상가가 어떻게 해서 나치라는 야만적인 행위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현대인은 한낱 부품에 전락했다고 본 하이데거 사상은 민족 공동체주의적이고, 반자유민주주의적이며, 농촌 지향적이고, 기술 문명에 비판적이었다. 나치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표방했던 구호는 바로 하이데거의 이런 입장과 일치했다. 하이데거는 당시 독일 대학 현실에 대한 불만, 독일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에 해당하는 근대 기술문명의 극복을 위해 나치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근대 기술문명에 대한 혐오는 그를 나치즘으로 이끌었으며, 후일 나치즘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위기 속에서 극우정당과 새로운 권력자들이 부상하면서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기에,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과 수용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재를 겪은 적이 있기에, 이는 단순히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경쟁으로 인한 분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소모품화되는 것을 경고하고 공동체와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하이데거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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